朝鮮을 사랑한 일본인 선교사들의 이야기- 잊혀진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서-영화 無名
- Joshua KEE
- 8月30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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更新日:9月13日

재일 한국 선교사들이 통곡하고 회개하며 본 그 영화가 일본에서 상영을 시작한다.
한 재일 한국인 선교사는 고백한다.
“복음의 불모지 일본에 복음을 전한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는 순간 그 자부심을 산산히 부서셨습니다. 우리들이 복음에 빗진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朝鮮인들의 온갖 핍박과 같은 민족의 고문을 견디며 그들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준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잊혀졌지만 나는 선교사란 내 이름이 그렇게 중요했던 것은 아닌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을 미워한다.
이토 히로부미의 일본을 미워한다.
그러나 이름 없는 당신의 일본은 사랑한다."
1896년, 노리마츠는 조선에서 온 한 남자로부터 조선의 국모가 일본인에게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이 마음 아픈 소식에 일본인으로서의 죄책감을 가진 그는 주변의 강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암흑과 같은 시기를 보내던 조선 땅으로 향한다.
그로부터 수년 후, 노리마츠의 정신을 이은 또 한 명의 일본인이 여전히 예수가 필요한 곳, 조선으로 향하는데... 국적과 민족을 넘어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오직 예수의 사랑만 남긴, 조선을 사랑하였고 조선인들이 사랑하였던 우리가 알지 못했던 무명(無名)의 일본인 선교사들의 이야기<CGN 홍보문>


“저는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조선인들에게 가고 싶습니다."
조선인보다 더 조선을 사랑한 일본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 노리야츠 마사야스(乘松雅休, 1863-1921)

사무라이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안정적인 관직과 보장된 미래가 있었지만, 어느 날 듣게 된 예수의 이야기가 그의 삶을 뒤흔들게 된다. 전도자의 삶을 택한 그는 고통가운데 있는 조선의 현실을 듣게되고 ‘하나님’이라는 조선어 한 마디만 배운 채 조선 땅에 발을 디딘다. 조선에서 가난하고 피박받는 자들의 친구가 된 그는 수원최초의 교회를 세운다. 그것이 수원성서강당이었고 훗날 수원동신교회가 되었다.<CGN 홍보문>


『살아도 주를 위해 죽어도 주를 위해, 시작도 사람을 위해 마감도 사람을 위해, 그 생애 충애(忠愛)뿐. 몸소 주의 사명을 띠고 그 모든 소유를 버리고, 부부 한 마음으로 복음을 조선에 전하였노라. 수십년 풍상에 그 고통이 어떠했으랴. 심폐(肺)의 모진 아픔 피골이 얼고 주려, 수족은 병으로 이즈러져, 그 조선에서의 희생 극심하도다. 그러나 그 거동이 오직 주를 의지하여 쓰고 단 즐거움을 바꾸려하지 않고, 그 생애는 기도와 감사만이로다.
우리의 많은 형제를 얻고, 주와 함께 모이고 주의 이름 영광 얻었나니, 그 생애 고난이요 또한 영광이로다. 임종하는 말에 조선 형제 일을 잊지 않고, 그 뼈를 조선에 남기기를 원하였노라. 이에 우리의 심비(碑)를 삼는 까닭이며, 주의 재림날에 이르리로다』
“신사참배가 종교 행위가 아닌 국민의례라는 소리는 거짓말입니다."
한국 이름 ”전영복”으로 불렸던 한복 입은 일본인 오다 나라지(織田楢次, 1908-1980)

독실한 불교 집안에서 자라나 승려의 길을 걸었으나, 영혼은 갈증이 풀리지 않았던 그는 우연히 만난 기독교에서 ”구원”에 대해 알게된다. 전도자가 되어 가장 복음이 필요한 땅 조선으로 향했지만,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핍박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에 굴복하지 않고 복음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는 찾아다니며 조선말로 복음을 전한다. 그리고 마침내, 육천 명이 넘는 조선인이 모인 평양숭실대학교 강당에서, 복음의 전도자인 한 일본인은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밀을 용감하게 외친 것이다. <CGN 홍보문>

그 후 오다 나리지 목사는 일본헌병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일본으로 강제 송환된다. 그후 오다 나리지 목사는 1939년 귀국해 일본신학교(현 도쿄신학대학)에 입학했다. 1941년 일본신학교를 졸업하고 미카와시마교회에서 목사가 된다. 1945년 종전 후 재일조선인교회의 요청으로 후쿠오카 교회의 목사가 되었고 이 무렵 전영복(田永福)으로 조선명으로 개명하였다. 1949년 재일대한기독교회 교회에서 목회를 한다. 1970년 이 교회를 사임하고 명예목사가 됐다. 1980년에 심부전으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잊혀진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따라간 2년의 시간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잊혀진 이름 없은 선교사들!
드라마를 통해서 만나는 선교사들의 생생한 발자취
2025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광복 80주년 기념 제작
한국과 일본, 가깝고도 먼 두나라의 관계가 극에 달했던 일제강점기
아픈 상처의 시간 속 복음 안에서 두나라의 가교(架橋)가 되었던 무명의 선교사들 <CGN 홍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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