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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성인이 예수님을 따르다― 柳町 功 교수의 믿음과 삶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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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町 功 교수프로필 ]

게이오대학 종합정책학부의 柳町 功 교수. 한국 재벌기업 연구의 권위자이자  "재일대한기독교회 요코하마교회"의 장로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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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의 사막 같은 일본의 지성인이 ‘예수님을 만나다’

일본에서 기독교인의 비율은 1% 가 되지 않는다. 그마저도 사회적 거리감과 편견이 깊이 깔린 기독교 불모지다. 그런 곳에서, 일본 지성인이자 경영학자인 柳町 功(야나기마치 이사오) 교수는 어떻게 예수를 만났을까?

그의 신앙 여정은 의외로 학문에서 시작됐다. 한국 재벌기업, 특히 삼성과 롯데의 역사와 경영 철학을 연구하던 그는 “한국을 알기 위해서는 한국어를 알아야 한다”며 연세대학교 박사과정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한국인 여성을 만났다. 훗날 아내가 될 그녀는 그를 교회로 이끌었다.


“처음엔 호기심이었죠. 일본에선 교회가 거의 없는데, 한국은 하늘에서 내려다봐도 붉은 십자가가 수없이 보이니까요.”


■ 결혼과 신앙, 그리고 ‘운전수’ 로 시작한 신앙의 여정

유학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교회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첫 교수로 부임한 나고야에서 부인과 함께 출석한 재일대한기독교회 나고야교회를 통해 따뜻한 교제와 커뮤니티를 경험하며 조금씩 마음이 열렸다.


“그땐 아내와 아이를 태워주기만 하는 ‘운전수’였죠.”


■진솔한 회심의 순간 — 두려움에서 ‘인격적 만남’으로

柳町 교수에게 종교는 어릴 적부터 ‘가까이해서는 안 될 무서운 것’이었다. 주변에 신흥종교에 빠져 가정을 힘들게 한 친척이 있었고, 일본 사회의 부정적인 종교 인식도 그를 멀어지게 했다.

그는 “종교는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낫다”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아내와 함께 교회를 오가며, 그는 ‘완벽한 사람들만 모이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교회가 사실은 서로의 부족함을 감싸 안는 공동체임을 조금씩 보게 됐다. 결정적인 순간은 일본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대인관계로 인한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시기였다.

     

“나도 죄인입니다.”


인생의 위기 속에서  아내의 권유로 예배당 안에 들어가 말씀을 들었고, 그 자리에서 그는 처음으로 예배당에 들어가 “나 같은 죄인이 올 수 있습니까? 하고 질문을 드렸는데, 목사님이 ‘나도 죄인이다’라는 그 말이 제 마음을 무너뜨렸습니다.”


그 한 문장은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두려움과 오해를 단숨에 무너뜨렸다. “나 같은 죄인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고, 그는 작은 결단으로 세례를 받았다. 이후 목요 성경공부, 수요 기도회, 새벽 기도 등 규칙적인 말씀 훈련 속에서 신앙의 뿌리가 깊어졌고, 봉사를 통해 신앙이 삶 속에 들어오게 되었다. 약 2년 만에 집사로, 이후 장로로 섬기게 된 여정은 모두 하나님의 손길이었다.


이제는 장로가 되어 성도를 섬기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주일 아침 덥고 비가 오고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날에도 교회 정문 입구에서 성도들을 맞이하며, 주차 봉사를 하는 柳町 교수는 말한다.


“부족해도 주신 자리에서 성실히 감당하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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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의 차이는 다른 관점을 배우는 기회

柳町 교수는 한국인 아내와 결혼하고 한국의 기업에 대해 연구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다른 문화의 관점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저는 하네다 공항에서 김포공항에 오는 순간 내안에 한국인의 문화로 모드가 바뀌는 것을 느낍니다 .”


일본인에게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으며 그 선을 넘는 것은 관계의 악화를 가져오게 된다. 하지만 한국은 일본에 비하여 상호간의 거리가 훨씬 가까운 느낌을 받게 된다고 한다. 또 하나의 차이는 의사결정 속도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렇게 과감하게 결정을 내리는 아내를 보면, 정말 한국인은 결정이 빠르고 과감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


교회 예배를 마치고 교인들과 점심식사를 하는 柳町 교수는 매운 육계장과 고추장 양념이 잔뜩 된 깻잎과 고추도 한입에 거뜬히 해치운다. 맵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육계장은 매워야 제 맛이 나지요 .”



■ 학자로서 본 한·일 비교와 협력의 길

경영학자로서 그는 한국 재벌과 일본 기업의 차이를 깊이 연구했다. 특히 ‘의사결정 속도’에서 큰 차이를 본다. “일본 기업은 70~80% 성공 확률이 있어야 시작하지만, 한국 기업은 60%만 돼도 갑니다. 이 속도감이 한국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었죠.”

그는 한·일 관계가 이전의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동반자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도체, 자동차 등 산업에서 일본의 소재·장비 기술과 한국의 제조 경쟁력을 결합하면 세계 시장에서 강력한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장로님은 “경제 협력은 곧 선교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서로의 강점을 인정하고 결합한다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함께 감당할 수 있죠.”라는 기자의 말에 크게 동감한다.


■ 일본 지성인의 신앙 고백 — 지식과 책임, 그리고 복음

柳町 功 교수는 장로로서 자신이 부족함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을 아시고 채워주십니다. 그래서 젊은이와 믿지 않는 이들에게 작은 진리라도 전하고 싶습니다.”


그의 기도 제목은 단순하다. 일본과 한국 모두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들을 예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회가 되는 것. “신앙의 눈으로 보면, 국적은 의미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나라 시민입니다. ”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이라 표현하지만, 일본 사회에서는 이미 명문대 교수이자 장로로서 상징적인 위치에 있다. 그는 이 위치를 ‘영적 특권’이 아닌 ‘책임의 자리’로 본다.

“20년 넘게 성경을 배웠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는 작은 진리라도, 모르는 분들께 쉽고 친근한 말로 전하고 싶습니다.”

그는 일본 지성인으로서 복음을 전할 때 두 가지 장벽을 체감한다고 한다.


첫째, 일본 사회 전반에 퍼진 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다. 오움진리교 사건과 같은 과거의 충격적 사례들이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종교 = 위험’이라는 인식을 남겼다.


둘째, 지성계 안에 자리한 합리주의·자율주의 가치관이다. “진리를 인간 스스로 탐구할 수 있다”는 전제가 강하기 때문에, 초월자에 대한 의존이나 겸손을 드러내는 것이 종종 약점으로 오해된다.


이런 환경 속에서 그는 장로로서, 교수로서 ‘살아 있는 본보기’가 되는 것이 복음의 첫걸음이라 말한다.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보다, 삶으로 말씀을 살아내는 사람이 일본 사회에 더 큰 신뢰를 줍니다. 학생들에게도, 교우들에게도, 제 일상과 태도가 제일 먼저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는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를 언급하며, 거기서 제시하는 감독과 장로의 자질이 이룰 수 없는 이상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을 목표로 삼고 걸어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족하다는 것을 아시고,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십니다. 그래서 저는 ‘완벽해서 쓰임 받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기 때문에 쓰임 받는 것’임을 압니다.”


결국, 柳町 교수에게 ‘지성인의 신앙적 책임’이란 지식으로 무장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지식과 삶을 일치시키고, 사회 속에서 복음적 가치가 신뢰받을 수 있도록 행동하며, 다음 세대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자리를 기쁨으로 감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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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町 功 교수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회심담이자, 일본 사회 속 지성인의 신앙 선언이다. 불모지 같은 일본 땅에서도 하나님은 사람을 세우시고, 가정을 통해, 학문을 통해, 그리고 교회를 통해 복음을 전하게 하신다. 그의 삶은 한·일 양국이 믿음 안에서 협력할 때 어떤 선교적 시너지가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다.


[柳町 功 교수 인터뷰 Audio Cl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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