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낙타와 바늘귀

-한 일본인 부자의 마지막 여정-

기자는 이형우 목사를 어느 커피숍에서 인터뷰했다. 그는 일본의 한 부자가 예수님을 만나게 된 놀라운 간증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이형우 목사의 간증이야기


첫번째 만남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

젊은 시절부터 수없이 읽어 온 말씀이다.

그러나 나는 일본 선교지에서 이 말씀을 새롭게 배우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 노인을 통해 이 말씀의 뒷부분을 보게 되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그의 이름은 미나카타 히로유키(南方博之).

1929년에 태어나 거의 한 세기를 살아낸 일본인이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올해 2월 22일이었다.

박경애 목사님이 전화를 주셨다.

“목사님, 꼭 한 번 만나 주셨으면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일본인 친구를 걱정하고 계셨다. 일본인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잊지 못하고 안부를 챙기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전화를 끊기 직전 박 목사님은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목사님, 그분은 목사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유를 듣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적지 않은 재산을 가진 사업가였다.

그가 소유한 건물만 해도 여러 층에 이르렀고, 오랫동안 사업을 통해 부를 일구어 온 사람이었다.

문제는 많은 목회자들이 그를 찾아와 복음을 이야기하다가 결국은 헌금이나 건축헌금, 기부 이야기로 끝냈다는 것이다.

그에게 목사는 어느새 영혼을 돌보는 사람이라기보다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목사가 찾아오면 먼저 경계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 마음은 오히려 편안해졌다.

나는 그의 재산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가진 건물도, 통장도, 사업도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오직 한 가지.

그의 영혼.

아흔일곱 해를 살아온 한 영혼이 하나님 없이 영원을 맞이하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만이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약속된 날, 나는 박경애 목사님과 함께 그의 건물을 찾았다.

1층은 중화요리점이었다.

붉은 간판 아래로 손님들이 드나들고 있었고, 오래된 중국집 특유의 음식 냄새가 식당 안에 가득했다.

우리를 맞이한 직원은 먼저 식사를 하라고 안내했다.

그런데 정작 주인인 그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그는 우리를 향해 가볍게 인사만 한 뒤 말했다.

“저는 따로 먹는 곳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리는 식탁에 앉아 있었지만 묘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는 우리를 손님으로는 맞았지만 아직 마음의 문은 열지 않은 상태였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경계심이 느껴졌다.

식사가 끝난 후 나는 더 이상 돌려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의 눈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미나카타 씨, 저는 당신의 재산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 순간이었다.

그의 얼굴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저는 오직 당신의 영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얼음처럼 굳어 있던 표정이 조금 풀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지금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마치 오래 잠겨 있던 문의 자물쇠가 안쪽에서 천천히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침묵이 허락이라는 것을 느꼈다.

“저에게 10분만 시간을 주십시오.”

그리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을 떠났고, 그 결과 죄와 고통 가운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분을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놀랍게도 그는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집중해서 들었다.

아흔일곱 해를 살아온 노인의 눈빛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진지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말을 샘물가까지 데려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물을 마시는 것은 말 자신이 결정해야 합니다.

오늘 저는 당신을 영원의 샘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의 물을 마시는 것은 당신의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말을 마친 후 방 안은 잠시 조용해졌다.

밖에서는 중화요리점 손님들의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러나 그 순간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그가 갑자기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信じる者には救いがある。”

순간 나는 귀를 의심했다.

“예?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는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信じる者には救いがある。”

믿는 자에게는 구원이 있다.

나는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미나카타 씨, 성경 말씀을 알고 계셨군요!”

그러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믿겠습니다.”


그 순간 나는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다.

마치 오랫동안 굳게 닫혀 있던 성문이 열리듯, 한 영혼의 문이 하나님께 열리는 것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는 함께 결신기도를 드렸다.

아흔일곱 해를 살아온 한 일본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이었다.

기도를 마친 후 그는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목사님은 정말 설득력이 있으십니다.”

나는 웃으며 감사하다고 대답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었습니다.

그를 설득한 것은 내 말이 아니었습니다.

성령께서 이미 그의 마음에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나는 그저 그 문 앞에 서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두 번째 만남

며칠이 지나고 3월 1일.

박경애 목사님으로부터 다급한 연락이 왔다.

“목사님, 미나카타 씨가 쓰러졌습니다.”

급히 찾아갔지만 그는 병원에 있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그는 의사를 집으로 불러 치료를 받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그의 상태가 많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정정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눈은 깊게 꺼져 있었다.

생명의 촛불이 서서히 짧아지고 있음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나를 보자마자 그가 뜻밖의 말을 했다.

“찬송을 듣고 싶습니다.”

나는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요즘은 유튜브에 좋은 찬송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목사님이 직접 불러 주십시오.”

잠시 말을 멈춘 그는 다시 말했다.

“녹음해 두고 계속 듣고 싶습니다.”

순간 목이 메었다.

평생 사업을 하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것을 소유했던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원하는 것은 돈도 아니고 건물도 아니었다.

찬송이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한 곡이 끝나고 또 한 곡이 이어졌다.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 없는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시험 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이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말고 기도드려 아뢰세

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볼 수 있을까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뢸까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진 자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 드리세

세상 친구 멸시하고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


그는 눈을 감고 조용히 들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기다리던 노래를 듣는 사람처럼.

그날 방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평안이 흘렀다.

나는 그 평안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았다.


세번째 만남

4월 8일.

나는 다시 그를 찾아갔다.

이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그가 세례를 받는 날이었다.

아흔일곱 살.

인생의 거의 모든 길을 걸어온 한 사람이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세례식은 화려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큰 잔치가 열리고 있을 것 같았다.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가 돌아와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97년 동안 세상을 살다가 마지막 순간 주님께 돌아온 한 영혼을 보시며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세례를 받은 그의 얼굴에는 깊은 평안이 깃들어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5월 18일.

박경애 목사님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목사님, 미나카타 씨가 소천하셨습니다.”

전화를 내려놓고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슬픔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절망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주님 품 안에 있었다.

이 세상의 삶은 끝났지만 영원한 삶은 시작되었다.

우리는 잠시 헤어진 것뿐이었다.


네 번째 만남

그리고 5월 26일.

나는 그의 장례식장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꽃으로 가득 장식된 장례식장 한가운데 그가 누워 있었다.

얼굴은 평안해 보였다.




마치 깊은 잠에 든 사람 같았다.

이제 그는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내가 왔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 마음에는 슬픔보다 소망이 더 컸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미나카타 씨, 다시 만납시다.’



다섯 번째 만남

천국에서 다시 만나면 그는 나를 보고 무엇이라고 말할까.

아마도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웃으며 말하지 않을까.

“목사님,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니면 더 큰 기쁨으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목사님, 그날 영원의 샘으로 데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그날의 재회 장면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그 상상 속에서 이미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 기쁨의 음성이.

그 환한 웃음이.

오늘도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안다.


사람으로는 불가능한 일도 하나님께는 가능하다는 것을.


그날 나는 한 부자의 죽음을 지켜본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의 영원한 탄생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 선교지에서 내가 경험한 가장 아름다운 기적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이형우 선교사 이력

일본에 36년거주

CMI (Cornerstone Ministries International) Japan대표

일본그리스도교장로회 및 대한예수교장로회목사

 
 
 

コメント


bottom of page